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 드디어 방탄소년단(BTS)이 그 어려운 걸 해냈습니다. 사실 점점 막강해진 팬덤 아미(ARMY)로 인해 어느 정도는 예상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미를 들여다보면 소유경제에서 구독경제로 바뀐 지금 시대, 팬슈머(Fansumer)의 힘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K팝의 빌보드 핫 100 1위 도전사는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원더걸스가 ‘노바디’로 79위에 올랐고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1위의 문턱인 2위를 차지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블랙핑크가 지난해 ‘킬 디스 러브’로 41위, 올해 ‘사워 캔디’와 ‘하우 유 라이크 댓’으로 각각 33위를 기록하며 방탄소년단을 잇는 K팝의 새로운 저변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도 1위는 여전히 큰 장벽으로 남아있던 게 사실입니다. 방탄소년단은 2017년 ‘DNA’로 67위를 기록하며 처음 핫 100 차트에 진입한 후 2018년 ‘페이크 러브’로 10위, 지난해 ‘작은 것들을 위한 시’로 8위, 올해 2월 ‘온’으로 4위를 기록하고 이번 ‘다이너마이트’로 드디어 1위에 올랐습니다. 그 흐름을 보면 차근차근 계단을 오르듯 성장해 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핫 100 1위 기록이 남다른 의미를 갖는 건 앨범 판매량을 척도로 삼는 빌보드 200이 팬덤의 규모를 보여주는 것과 달리 음원 다운로드 및 스트리밍 횟수, 미국 내 라디오 방송 횟수, 유튜브 조회수 등이 합산되어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미국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소비된 히트곡을 말해주는 것이죠.
빌보드에 의하면 ‘다이너마이트’는 발매 첫 주 미국에서 3390만 회 스트리밍됐고 30만 건의 디지털 및 실물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늘 약점이던 라디오 방송 횟수도 ‘팝송 라디오 차트’에서 방탄소년단 역대 최고 순위인 20위에 오를 정도로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 특정 팬덤만이 아닌 명실공히 글로벌한 일반 대중들이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됐다는 뜻입니다.
사실 방탄소년단의 성공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팬덤 ‘아미’의 막강한 힘입니다. 이번 1위 후에도 방탄소년단이 제일 먼저 내놓은 소감이 아미에 대한 고마움이었습니다. 빌보드 200 1위를 먼저 차지한 것 역시 앨범 판매량에 있어 독보적인 힘을 발휘한 아미들의 글로벌한 팬덤 소비가 따라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팬덤은 그들만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그 저변을 일반 대중들로 넓히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늘 핫 100 차트에서 방탄소년단의 취약점으로 꼽히던 라디오 방송 횟수가 급격히 늘어난 데는 물론 이들에 대한 미국 10대들의 대중적 지지가 기반이 되었겠지만 그 이면에는 아미들의 적극적이고 조직적인 ‘음악 신청’이 있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방탄소년단의 이 이례적인 성공은 어찌 보면 이제 구독경제로 들어선 새로운 소비의 시대를 일찍이 들여다보고 디지털로 인해 만들어질 글로벌 시장을 예견한 듯한 이들의 SNS 팬덤 전략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SNS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그 성장을 함께해 온 아미들은 이제 방탄소년단이 어떤 음원을 내놓아도 구매하고 스스로 주변에 입소문을 내는 막강한 팬슈머들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른바 ‘팬덤 소비’라고 부르는 독특한 ‘의리 소비’의 형태로 기획사 아이돌 그룹들이 추구해 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이 보여주는 팬덤의 소비는 구독경제의 ‘서비스 개념’과 성장을 공유하는 ‘프로듀싱’ 개념까지 담겨 있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구독경제의 핵심은 상품 판매가 아니라 상품 서비스에 있습니다. 방탄소년단이 팬덤을 구축하며 해왔던 일련의 SNS 활동들은 바로 이 서비스 개념을 제대로 구현해 온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생산자인 아티스트와 소비자인 팬 사이의 신뢰는 하나의 상품만이 아니라 그 생산자가 내놓은 다양한 상품들을 지속적으로 구매하게 하는 연결고리가 됩니다.
이 서비스에서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방탄소년단이 처음부터 완전체, 즉 완성품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팬들과의 소통을 통해 조금씩 성장했고 그러면서 조금씩 완성도가 높아졌던 것입니다.
물론 그건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성장이라는 점에서 팬들의 참여와 소통을 더욱 공고하게 만듭니다. 누군가 만든 것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참여한 것을 그저 소비하는 코프로듀싱(Co-producing)의 개념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들어 업계에서도 팬슈머라는 지칭이 통용되고 있는 걸 보면 이러한 현상이 스타와 팬 사이에 벌어지는 일만이 아니라 소비 시장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고객과의 지속적인 접촉과 이를 통해 함께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가는 것으로 팬덤에 가까운 소비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것도 국지적이 아닌 글로벌한 시장 속에서 말이죠. 방탄소년단의 성공을 들여다보면 우리 시대의 달라진 소비 방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 thekian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