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COVID-19로 시작해서 COVID-19로 끝난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또한 기업이라는 조직이 탄생한 이래 조직의 성과보다 구성원의 육체적·심리적 안전에 더 초점을 둔 최초의 해로 기록될 겁니다. 그런 이유로 2021년은 다른 차원의 해가 될 가능성이 큰데요, 2021년의 글로벌 직장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2020년 전 세계는 4차 산업혁명 물결에 힘입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지속적인 추진과 COVID-19의 교묘한 결합으로 언택트 일하는 방식이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재택근무를 중심으로 한 원격근무가 확산되었고 이를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협업 시스템, 화상회의 시스템 등이 서둘러 도입되었습니다. 또한 디지털화 추세에 따라 기업은 단순 반복 업무를 대체할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 프로그램과 빅데이터, 인공지능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2021년은 직원이 직장에서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 하이브리드(Hybrid) 형태가 본격적으로 유행하는 해가 될 전망입니다. 여기서 하이브리드 근무 형태란 ▲원격근무와 사무실 근무의 혼합 ▲조직 성과와 직원 웰빙의 균형 ▲직원 역량 향상을 위한 업스킬링(Upskilling)과 리스킬링(Reskilling)의 혼용 ▲사람과 인공지능, 로봇의 공존 ▲일과 삶의 조화 ▲X세대와 MZ세대의 공생 및 협업 등을 의미합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주제와 이슈들이 있을 수 있으나 여기서는 인사관리 차원이 아닌 직원 및 직장과 관련된 대표적인 3가지 글로벌 트렌드를 소개해봅니다.
재택근무는 기업 차원에서는 업무 소통이 감소하고 협업의 질이 감소했고 개인 차원에서는 개인 간 거리감, 소원함이 증가하고 조직에의 소속감이 줄어드는 등 조직의 성과 창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기업들은 업무 환경에 극단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는 대신 직원들이 며칠간 사무실에 출근하고 나머지는 재택근무 등 원격으로 일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도입하고 있고 이는 2021년에 더욱 확산될 전망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회사에서는 조직의 구조를 지탱하고 구성원 간 친밀감을 유지하며 집에서는 개인의 독립성과 업무 수행의 유연성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기업용 메신저 전문기업 슬랙이 미국, 영국, 독일, 일본, 호주의 지식근로자 9,000여 명을 대상으로 이상적인 근무 상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직원의 72.2%가 하이브리드 형태의 근무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풀타임 사무실 근무로 돌아가길 원하는 직원은 11.6%에 그쳤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니콜라스 블룸 교수는 주 5일 중 2일 정도가 적절한 원격근무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하이브리드 워크플레이스’ 환경 구축에 나서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직원이 2020년 3월부터 원격근무를 시행하고 있으며 COVID-19 상황이 끝나면 관리자 승인 하에 직원의 50% 미만 수준으로 원격근무를 유지할 계획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영구적으로 원격근무를 선택한 직원들에게는 사무실 공간을 할당하지 않고 ‘터치다운 공간(Touchdown Space)’이라고 명명한 공용 공간을 이용하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
원격근무를 시행 중인 구글의 2020년 9월 내부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직원의 62%가 다시 사무실 복귀를 원하지만 매일 출근하기를 원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따라 구글은 하이브리드 모델을 적용하기 위해 사무실 배치나 장기적인 원격근무 옵션 등을 재설계하고 있습니다. 이미 COVID-19가 한참이던 2020년 여름, 사무직을 대상으로 2021년 6월까지 원격근무 옵션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글로벌 급식업체인 소덱소(Sodexo)는 인력을 A팀과 B팀으로 나눠 사무실 근무와 원격근무를 순환하며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사무실을 더 안전하고 유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편, 드롭박스는 재택근무 정책의 의무 기간을 2021년 6월까지 연장했고 페이스북도 유사한 타임라인을 발표했으며 트위터는 영구 원격근무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의 배경에는 COVID-19로 인한 영향 이외에 핵심 인재를 경쟁적으로 영입하려는 전략적인 목적도 포함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많은 직원들이 물리적 사무공간에서 일하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기 때문에 2021년에는 많은 회사들이 직원들에게 유연한 공간과 일정을 제공하고자 할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인터넷 사용 비용, 사무용 장비 및 자재 제공, 심지어 회사 탕비실에서 제공되는 커피 및 다과 공급 등을 포함한 원격근무 규정이 더욱 정교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0년간 과로와 스트레스, 번아웃 및 정신건강 문제로 고통받는 직원들이 점차 증가해 왔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확산된 이유는 직원들이 일에 전념하느라 본인들의 웰빙에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저성장과 포스트 코로나라는 뉴노멀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직원과 회사 모두에게 직원의 웰빙이 중요 이슈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0년은 COVID-19로 인한 직원의 육체적 건강이 최대 관심사였을 뿐만 아니라 이동 제재(Lockdown) 확대, 원격근무로의 전환, 구조조정 등이 발생하면서 직원들의 정신적 건강관리가 이슈로 동시에 부상했습니다. 글로벌 회계법인인 PwC가 2020년 9월 미국의 최고인사책임자(CHRO) 7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1%가 직원의 번아웃과 불안감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습니다.
팬데믹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 생산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 그리고 조직에 대한 실망으로 인한 감정 고갈은 직원과 리더 모두에게 커다란 피해를 주었습니다. 따라서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회복하기 위해 직원의 웰빙에 대한 투자가 2021년에는 더욱 확대될 것입니다.
직원은 기업에게 유연한 근무시간, 안전한 근무시설, 유급 휴가, 육아, 교육·훈련, 정신건강 등과 관련된 지원을 점점 더 강하게 요구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직원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시도할 것입니다.
넷플릭스는 육아휴직의 유급 기간을 52주로 확대했습니다. 즉 1년 내내 유급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애플이 18주, 아마존이 20주, 마이크로소프트가 22주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지원인 셈입니다.
어도비는 직원들에게 가상 웰빙 세미나, 24시간 연중 무휴 상담 서비스, 캄(Calm)과 같은 명상 앱에 대한 액세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어도비에서 제공하는 상담 서비스와 같은 직원 지원 프로그램(Employee Assistance Program : EAP)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EAP는 1930년대 후반, 미국에서 직원들의 음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프로그램이 기원입니다. 1970년대 들어 알코올 이슈 해결에서 정신건강과 관련된 영역으로 확대되었고 조직 구성원으로서의 공적 영역뿐 아니라 개인사, 가족 등과 같은 사적 영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부정적인 측면을 해결하려는 시도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방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COVID-19로 인해 피폐해진 직원들을 대상으로 심리적 안정감을 향상시키기 위한 대안으로 부상될 전망입니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계속될 것입니다. 기업은 보다 더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프로세스를 업무에 적용하고 있으며 이미 빅데이터, 인공지능 기술을 현장에 적용 중에 있습니다. 생산 공정의 자동화는 이미 예전의 이야기가 되었고 몇 해 전부터는 RPA 방식이 사무 분야에 등장해 기존의 단순 저부가가치 업무들은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 대체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직무와 직업들이 사라지거나 사라질 상황에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 직무와 직업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특히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 디지털과 관련된 직무들에 대해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2021년 가장 수요가 많은 직무 관련 기술은 인공지능, 머신러닝, 클라우드 컴퓨팅, 사이버 보안, 블록체인, 헬스케어 IT, 사용자 경험(UX) 디자인 등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기업은 이러한 직무를 보유한 인재를 외부에서 데려오거나 내부에서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경주할 것이고 특히 내부 인력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또는 훈련 방법으로 업스킬링과 리스킬링이 증가할 것입니다.
가트너의 조사에 의하면 신입사원 중 16%만이 현재의 직업과 미래의 직업에 필요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2020년 6~9월 750여 명의 HR 리더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21년 최고의 주안점은 68%의 응답률을 보인 ‘중요한 스킬과 역량 구축’으로 나타났습니다. 48%로 2위인 ‘조직 설계 및 변화관리’와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미국 통신업체인 버라이즌은 2030년까지 새로운 직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직원 2만 명을, 미래의 일자리를 위해 50만 명의 저임금 노동자를 재교육할 예정입니다. 아마존은 직원 역량 향상 및 재교육을 위해 2025년까지 10만 명의 미국 직원들에게 7억 달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이처럼 COVID-19의 영향으로 시장이 바뀌고 디지털화로 인해 신기술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업스킬링 및 리스킬링 교육을 받은 직원에 대한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2020년이 COVID-19로 인한 ‘위기관리’에 초점을 둔 해였다면 2021년은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한 ‘강한 조직 만들기’로 초점이 이동할 것입니다. 이러한 강한 조직이 되기 위해 직장의 근무형태는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가 혼용된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고 직원들의 신체적 건강, 물리적 안전과 더불어 정신적, 심리적 안정감에 대한 관리가 강화될 것입니다. 또한 기존 직무에 대한 숙련도 향상 교육과 함께 새로운 직무에 대한 재교육을 통해 직원의 역량을 향상하고자 하는 노력이 지속될 전망입니다.
강한 조직이 위에서 언급한 3가지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리더의 역할도 중요하고 일반 직원의 자기 리더십(Self-Leadership)도 중요하며 업무를 수행하는 시스템뿐 아니라 구성원 간의 협업도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조직문화가 사실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략을 잘 세워야 합니다. 예를 들면 하이브리드 근무 방식이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직원 모니터링 소프트웨어와 같은 솔루션은 도입한 기업들이 이를 운영하는 방식에 따라 직원과 조직 간 신뢰 이슈를 야기할 소지가 큽니다. 실제 과도한 모니터링으로 인해 재택근무 직원의 스트레스가 상승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상황입니다.
다른 예로 디지털 프로세스에 대한 의존도 증가를 들 수 있습니다. RPA의 경우 업무 효율성을 높인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저부가가치 업무를 인공지능이 대체하면서 해당 직무를 수행하던 인력은 일자리를 잃게 되는 단점도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자리를 잃게 되는 인력을 재교육해 상위 난이도나 새로운 업무를 부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이런 식의 선순환은 쉽지 않습니다. ‘워크포스 2020’ 프로젝트를 진행한 미국 통신업체 AT&T는 2013년부터 전 임직원의 디지털 역량 재교육 프로젝트를 수행했는데 47%인 14만 명만이 신규 직무 역량을 확보한 바 있습니다. 즉 47%에 속하지 못한 인력들 중 기존 직무를 계속 추진하는 인력을 제외한 나머지는 사실상 도태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력들의 반발로 제2의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든 존재합니다.
바야흐로 기업의 체질을 바꿔야 하는 시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동안 ‘체격을 키워야 한다’, ‘체력을 길러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해가 바뀔 때마다 관행적으로 언급되어 왔습니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차원으로 혹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들도 10여 년 전부터 계속 있어 왔고 실제 변화에 성공한 기업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기업들에게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습니다.
이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기가 왔습니다. 급변하는 시대에 맞는 체질을 신속하게 확보함으로써 생존에서 성장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조성일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sizif@posri.re.kr